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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d

[4회 도검온] 환의-습월- 샘플

[미카사니/전체연령가/A5/40p(예상중)/₩4000(예상중)]

 

1. 파본, 낙장 등의 책의 손상 외의 환불문의는 절대 받지 않습니다.

2. 이 책에 등장하는 인명, 소재는 실제 사건과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3. 이 책은 도검난무-ONLINE-의 2차 창작 책입니다. 공식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개인적인 2차 설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4. 현재 작업중입니다. 페이지와 가격에서 변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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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주 의미를 부여한다. 보이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타인의 말에, 표정에,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신호를 받아 해석했다. 글에 적힌 사소한 단어와 문맥에도 의미를 둬 분석하는 일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림은 의미를 담은 상징물을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었으며, 잡지에 달마다 올라오는 '이달의 꽃' '이달의 보석' 코너를 보면 사소한 꽃과 보석조차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남성이 여성에게 어떤 물품을 전하느냐에도 의미가 담겨있다. 수많은 의미가 인간사에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함께 해왔다. 

 

그러나 인간이 모든 것에 의미를 두고 행동한다면 인간사 속의 위대한 발명은 절반쯤 사라졌을 것이다.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던 어이없는 사건들도 모두 설명이 가능하여 여태까지 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서로 자신의 분석이 맞다며 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행동이 무의식에 좌우되고 의미 없는 것들도 많았다. 마루에 앉아 다리를 흔드는게 아무 의미 없듯 말이다. 아마 '아까 마루에서 다리를 흔들던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고 물어보면 물어본 사람을 더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쉽게 답해주지 못할 것이다. 물제비를 잘 뜨기 위해 연못에 돌을 던지는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눈 앞에 납작하니 잘 날아갈 것 같은 돌이 있었을 뿐이다. 주워서 던져보니 조금만 더 하면 더 멀리 잘 던져질 것 같기에 두번 세번 돌을 주웠을 뿐이다. 눈 앞에 예쁜 꽃이 있어 바라보는 일도 그렇다. 꺾자니 꽃에게 미안하고 손 안에 쥐어봐야 금방 내던질 게 뻔하지만, 예쁜 자태를 좀 더 눈에 담아두고 싶기에 오래 볼 뿐이다. 즐거운 일이 있어 표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싱글벙글 웃는게 굳이 의미가 있지 않듯, 오늘의 일도 그럴 뿐이다. 새삼스럽게 얼굴이 창백해지거나 굳어질만한 큰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눈치를 보며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곤란한 부탁이에요?"

 

이 때 여자의 말에는 분명 의미가 있었다. '자신에게 있어 그렇게 당황해 할 정도로 무리한 부탁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예상 밖의 반응이라 당황스럽지만, 자신이 납득 가능한 선에서의 해명이 있다면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정도로 해석 가능하겠다.

여자는 고개를 기울이며 상대의 반응을 살폈다. 부탁을 들은 직후보다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가는 얼굴이다. 크게 커졌다가 서서히 제 크기를 되찾아가는 눈과 차츰 원래의 혈색으로 돌아오는 얼굴피부가 눈에 보였다. 놀란 가슴은 진정했어도 입은 떨어지지 않는 걸 보면 생각이 많은 듯 했다. 시간차가 있게 내놓는 답만 해도 그랬다.

 

"곤란하다기 보다는... 그런 부탁은 상상도 해본 적 없어서 말이다. 이런 반응부터 보여 미안하구나."

 

그래도 정말 말 외에 다른 뜻은 없는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여는 움츠렸던 목과 어깨를 폈다. 

 

"지금 당장 입고싶단 얘기는 아니니까 미카즈키가 편할 시간에 빌려주면 돼요. 정 아니면 거절해도 되고요." 

 

미카즈키라 불린 남자는 웃고있으나 여전히 불편한 느낌을 감추지 못했다. 단순히 불만족스러운 제안을 들어 기분이 나빠보이진 않았다. 혹은 개인마다 용납할 수 있는 선이 있는데 여자가 불쑥 자신이 눈감아 줄 수 없는 선을 넘어왔다는 불쾌감을 느끼는 상태도 아닌 듯 했다.

여자에게 '미카즈키'라고 불린 남자는 20대 중반이나 많이 잡으면 30대 초반 청년으로 보였다. 말끔한 얼굴이 잘 생긴 젊은 청년이었다. 한창 젊다고 하여 단편적으로 판단하려 든다면 이 사람에 대해 한참이나 오판을 내린 셈이다. 젊고 잘생긴 외모에 비해 오묘한 분위기였다. 그가 입고있는 옷때문인가? 미카즈키라 불린 남자는 옛 공관의 평상복이라는 가리기누를 연상케 하는 푸른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파란 가리기누의 소매 끝과 옷자락 끝에 붙은 금술장식으로 화려함을 더했고 밑으로 겹쳐 입은 두어겹의 흰 옷이 펼쳐진 푸른 옷 사이로 비금비금 보였다. 잘 다려진 회색 하카마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잘생기고 말끔한 외모에 비해 굉장히 격식을 차리는 인물 같았다. 지금도 여자와 같은 마루에 나란히 앉아있지만 허리를 꼿꼿하게 펴 가지런히 정좌하고 있으며, 넓은 소매와 가리기누의 옷 뒷자락은 구김이 없도록 넓게 펼쳐놓고 있었다. 단순히 차림새로 그를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어보였다. 

그는 불편한 사실을 억지로 마주하는 이야기 속의 가련한 주인공처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여... 이 옷이어야 하는 까닭이라도 정해져 있느냐?" 

 

미카즈키의 말은 고서에 나오는 왕의 격식을 차린 시처럼 고풍스러웠다. 자신은 여자보다 나이가 많은게 당연하며 옛 사람이라도 되는 양 말했다. 원전 그대로 읊어야 하기에 가사 옆에 현대어로 풀이가 반드시 적히는 오래된 노가쿠의 말투를 옮겨놓으면 이런 느낌일까. 그제서야 이 불편한 느낌이 설명되었다. 오래 살아온 현자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목격했을 때 이를 이해해보려는 필사적인 마음과 닮아있었다. 그런 미카즈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당연히 미카즈키의 옷이니까요. 소유자의 허락을 구하는게 당연하잖아요?"

 

"나의 의도는 그 답을 원한 게 아니란다."

 

"다른 도검남사의 옷을 빌려 입는 것도 미카즈키를 두고 예의는 아닌걸요."

 

"굳이 도검남사의 옷을 빌려 입어야만 하는 연유가 있느냔 뜻이었다."

 

여자는 정말로 별 일 아니라는 듯 시종일관 웃음기 섞인 가벼운 목소리로 답하고 있는데, 미카즈키의 목소리는 영 밝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조금 기분이 상했는지 눈썹이 팔자를 그렸다.

 

고래부터 여성이 남복을 찾아 입는 경우는 여성에게 지워진 의무와 제약에서 벗어나 활동하기 위해서였다. 길고 화려한 옷은 분명 눈이 즐겁고 부귀영화의 상징이었다. 동시에 활동하기 힘든 기장과 혹여 흙이라도 묻히면 더러워질 아름다움의 옷은 그 자체로 여성의 족쇄였다. 그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성들은 남복을 찾았다. 남성들이 독식해온 사회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 먼 길을 홀몸으로 안전하게 가야할 때, 여성임을 당당하게 내보이면 위험한 상황에서 남성의 행세를 하기 위해 남장을 했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증가하자 편의성을 이유로 남복은 더이상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지만, 미카즈키가 바라봐온 천년의 세월에서 남자의 옷이란 그런 의미였다. 시대가 바뀌어 그동안의 가치가 현재에 와서 더이상 쓸모없게 됐을 지라도 사람이 평생동안의 가치를 금방 버릴 수 없다. 미카즈키 또한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미카즈키의 앞에 있는 여자의 경우 사니와審神者였다. 사물의 목소리를 들어 그 목소리를 인간의 모습으로 실체화시킬 수 있는 자. 그 능력을 이용해 명검명도의 츠쿠모가미들을 인간의 형태로 현현시켜 과거의 역사를 개변하고자 하는 적들과 싸우는 막중한 임무를 지고 있었다. 그 임무를 지닌 자, 안전과 역사를 지킨다는 명목에 의해 혼마루本成에 홀로 기거하며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미카즈키는 그런 사니와에 의해 현현된 도검 중 하나, 미카즈키 무네치카三日月宗近의 현신이었다. 미카즈키 무네치카란 칼에 엮인 역사가 그의 일생이었고 그 칼의 수명이 미카즈키의 수명이다. 인간의 가치관이 쉽게 바뀌지 않듯, 인간에게 영향을 받은 그도 마찬가지다. 그가 천년이라는 이력동안 봐왔던 의미가 먼저 떠오르는게 당연했다. 이런 미카즈키 무네치카에게 갑작스레 '미카즈키의 옷을 입어보고 싶으니 빌려줄 수 있느냐'라고 물어본다면 그는 여자가 남자옷을 입어야 할 이유에 대해 신경쓰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 공간에서 사니와 홀로 인간인게 외롭고 슬퍼서 바깥을 동경하고 있었다면? 혼마루를 떠날 수 없는 자신과 다르게 과거 어느 시대로든 넘어가 싸워야하는 도검남사들이 부러워서, 그 마음을 달래보고자 한시나마 옷을 빌려입는 것이라면? 혼마루를 떠나고 싶은데 떠날 수 없는 자신에게 떠날 의지를 새기기 위해 남복을 하는 것은? 

 

'그럴 리야 없겠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기우다. 아님을 알면서도 떠올리니 입맛이 썼다. 사니와가 빤히 보고 있기에 입맛을 다실 수 없어 써진 입 안의 마른 침을 굴려 삼켰다. 그도 그럴게 정말 바깥세상을 원하여 떠나고 싶어한다면 미카즈키 무네치카의 고백을 허락하지도 않았을 일이다. 츠쿠모가미와 사귀어 떠날 장소에 마음의 짐과 추억의 발자국을 남겨두는 일을 할 위인이 아니었다.

아닌가? 애정으로도 더이상 그 마음을 다스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아니면 미카즈키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죽일 수 있을만큼 충분히 애정을 주지 못했던 거라면? 동등한 연인이라 지껄여놓고, 지금 이렇게 의미를 다그쳐 묻는 순간에도 그는 사니와를 어린아이 취급하고 있던 것인가? 이렇게 미카즈키는 자각하지 못하고 쌓아왔던 행동이, 서운한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 더이상 미카즈키를 용서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기에 떠나려고 하는 것인가? 

마음 속의 정리되지 않은 불안이 얼굴에도 드러났는지 사니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미카즈키를 보고 있었다. 

 

"미카즈키, 무슨 생각 해요?"

 

사니와가 자신은 이곳에 있다고 알려주듯 살포시 잡아 쥔 손은 인간의 체온으로 따뜻했다. 닿은 손의 온도만큼 그를 걱정하는 말도 따스했다. 천리 만리 가버린 정신을 붙들어 놓는 데에 이만한 즉효약이 없었다. 역시 늙은이의 기우일 뿐인가. 미카즈키는 솟구치는 의심의 싹을 자르기 위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 것도 아니란다. 잠시 생각이 길었구나. 미안하다."

 

오늘은 유난히 미카즈키가 미안하다고 자주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이 그리 미안한지 미카즈키의 얼굴은 여전히 웃는 얼굴 위로 수심이 드리워져 있었다. 거절해도 된다고 말했는데 무엇이 그리 마음에 걸려서일까. 무엇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우물 뜸을 들이고 있는지 사니와로선 영 알기 힘들었다. 정 그러면 없던 일로 하자고 하려는 찰나, 미카즈키가 사니와의 얼굴에 한 손을 대었다. 뺨을 감싸고 엄지손가락으로 눈 밑을 부드럽게 덧그리며 이제야 조금 후련한 답을 내렸다.

 

"겨우 이만한 일에 이유를 캐묻는 것도 좋지 않겠지. 나의 출진이야 주인의 뜻에 달렸으니, 시기는 언제가 좋겠느냐?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만."

 

미카즈키의 말을 들은 사니와는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양 키득키득 웃었다.

 

"옷만 벗어주시면 되는건데 시간이 필요해요?"

 

미카즈키의 불안을 풀어주기 위함인지 사니와는 미카즈키의 손에 웃는 얼굴을 맡기고 친애를 표하는 애완동물마냥 뺨을 부볐다. 미카즈키의 속 모를 불안이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상상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특별히 허락이 떨어져서 아주 기쁘다던가 결국 허락을 받아냈다는 득의감은 없었다. 사니와는 말을 꺼내기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이 화제는 평소의 대화주제였을 뿐, 미카즈키의 걱정만큼 간절한 바람이 이뤄졌다는 성취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역시 사서 걱정한건가? 조금 안심이 된 미카즈키는 사니와에게 어울려주며 입을 열었다. 미카즈키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편안해졌다.

 

"나도 나름의 준비가 필요하단다. 당장 오늘 내일은 아니되겠구나."

 

"그도 그렇네요. 그럼 미카즈키가 편한 날에 불러주세요. 저는 어차피 갑작스러운 큰 일 아닌 이상 늘 집무실에 있으니까."

 

"그리 하마. 아 참, 그 날이 오기까지는 혹여 출진은 없었으면 좋겠구나."

 

사니와는 아까의 미카즈키 반응도 있었으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가보다고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 이틀이야 아까의 놀란 반응을 생각하면 필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출진까지 미뤄달라니? 만약 이걸 핑계로 아주 놀고 싶은 욕심이라면 연인이라 해도 봐주지 않을 것이다. 눈꼬리 끝으로 흘겨보는 시선에 의뭉스러운 빛이 어렸다. 

 

"어려운 일은 아닌데... 무슨 준비를 하셔야 하길래 출진도 못하신다고 하세요?"

 

한참이나 부비적대던 미카즈키의 손을 잡아 내려놓고 미카즈키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역시 사니와보다 까마득하게 나이를 먹은 신이라 그런지 눈을 마주본들 알아낼 수 있는건 없었다. 마루 아래로 쏟아지는 햇빛을 받아서인지 푸른 눈동자 속에 어스름히 초승달이 보였다. 빛을 받아 모든게 보이는 순간에도 그의 속은 알기 어려웠다. 외려 사니와의 속마음만 먼지 한올까지 탈탈 털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걸 아는지 미카즈키의 눈이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모든 일에는 시기와 절차가 있는 법이잖느냐. 이 정도는 이해해다오. 나의 주인이 입을 옷인데 허투루 벗어줄 수야 없지 않누?"

 

웃는 얼굴에 장사 없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말하는데 넘어가지 않을 이 어디 있을까? 아예 안된다고 거절하지 않았으니 소유자의 사정을 감안하는게 예의이기도 했다. 사니와는 허락이 떨어졌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즈키와 마주하고 있으면 그를 나타낸다고 봐도 좋을 파란 가리기누가 새삼스럽게 눈에 밟혔다. 허락만 떨어졌지 무엇 하나 제대로 정해진 바 없지만 벌써 몇번이나 입어본 기분이다. 상체에 그려진 초승달을 본뜬 미카즈키 무네치카를 뜻하는 도몬刀紋의 금박이 반짝거렸다. 속물적으로 말하자면, 누가 봐도 한 눈에 비싼 옷이라 알 수 있을 정도로 고급품이다. 천을 아낌없이 써 장신의 미카즈키에게도 품이 넉넉했다. 사니와가 걸친다면 분명 옷에 파묻힌 느낌이겠지. 아버지의 옷을 훔쳐입은 어린아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볼품없을 거란 생각보다 마냥 저 옷을 입어볼 수 있다는게 기분 좋았다. 

사니와는 뭐가 그리 좋은지 뿌듯한 얼굴로 미카즈키의 품에 고개를 파묻고 허리에 팔을 둘렀다. 미카즈키는 불시에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품으로 파고드는 사니와에게 놀라지 않았다. 당연하게 해야하는 반응처럼 사니와를 소매 안으로 감추고 등을 토닥였다. 익숙한 포옹이다. 허락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미카즈키의 팔 안에서 흥흥흥하는 콧노래 소리 비슷한 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이리 기뻐할 줄 알았더라면 쓸데없는 걱정으로 사니와를 걱정하게 만들지 않았을텐데. 미카즈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묵직한 발걸음소리가 복도 끝에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며 머리 위에서 다른 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오붓한 한때를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원정부대가 돌아온 것 같아서 말이야." 

 

미카즈키도, 미카즈키의 품에 기대고 있던 사니와도 고개를 들어 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오늘의 근시인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였다. 그는 사정을 아니 어지간해서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는 어색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하기사 어떤 도검남사가 한창 애정행각 중인 주인과 연인 사이에 끼어들어 찬물을 끼얹고 싶을까. 지청구나 얻어듣지 않으면 다행일텐데. 다행히도 쇼쿠다이키리의 사니와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미카즈키의 품에서 나와 일어섰다. 미카즈키도 근시가 보는 앞에서 가지 못하게 품에 껴안고 그를 흘겨보기보다는 순순히 사니와를 놓아주는 쪽을 택했다. 주인의 업무시간을 방해하고 있는 이는 자신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오게 해서 미안해. 지금 확인하러 가자. 미카즈키, 저녁에 봐요."   

 

사니와는 데리러 온 근시를 따라가기 전, 미카즈키에게 짧게 인사를 남겼다. 살짝 손을 흔들어준 후, 망설임 없이 근시가 왔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쇼쿠다이키리도 미카즈키에게 짧게 목례를 한 후, 사니와가 없을동안 있었던 업무적인 사항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사니와의 반보 뒤에서 그를 따랐다. 멀어지는 뒷모습도 미카즈키의 사니와는 늘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자신의 맡은 일을 싫다고 떼를 쓰며 미루는 사람이 아니다. 바지런한 이다. 저런 이가 남몰래 바깥을 동경하여 남복을 하고 떠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만 봐도 미카즈키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게 확연했다. 

그렇다고 마냥 확신할 수도 없는 노릇. 사니와는 미카즈키의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않았었다. 천년이나 살아 는 것은 햇수뿐만이 아니다. 겪은 세월에 누적된 역사처럼 이 정도는 눈치챌 머리가 있었다. 사니와의 요청은 사소한 일이고 이 모든 걱정은 뚜렷한 근거없이 오롯이 미카즈키의 상상뿐인 가정이라 더 캐묻지 않았다. 열길 우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인간의 마음만큼 알기 쉬우면서도 지레짐작하기 어려운 게 어디있던가. 

 

자신의 무릎께를 내려보며 멍하니 생각만하고 있었으니 눈을 떠도 앞에 무엇이 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생각에 방점을 찍자 그제야 시야가 밝아졌다. 미카즈키의 눈에 사니와에게 입혀줘야 하는 자신의 옷이 들어왔다. 은은한 사능紗綾형의 무늬가 천 전체를 덮고 있는 아름다운 파란 비단. 금박무늬가 드문드문 박힌 회색 하카마의 자락. 사니와에게 육신을 받는 순간부터 입고있던 그 옷이다. 지금은 출진이 없고 내번도 아니니 푸른 가리기누 위에 덧입던 호갑과 코테小手를 벗어둔 상태지만, 늘 그의 장속束은 피부 위에는 가죽호갑을 두르고 지금의 옷 위에 보호구를 단단히 덧댄 후 허리춤에 본체를 달았다. 그 모습이 미카즈키 무네치카의 기본장속이다. 사니와가 남자옷이라 뻔히 알고있는 가리기누를 입고싶어 하는건 한도 끝도 없이 염려해야 하는 만큼 떨떠름했지만 기왕지사 자신의 옷을 빌려달라 했으니 사소한 것까지 전부 다 주고 싶었다. 미카즈키 무네치카가 늘 걸치는 전부를 입고 무슨 생각을 할지 탐탁찮은 마음 뒤에서는 호기심도 일었다.